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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1 20:06

현대미술의 조형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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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Shh   180*70 oil on canvas  2015   Im Jong yeop

 

 

1. 시각적 통일과 시적통일

회화에 있어서의 두 개의 다른 통일의 원리 - 로저 프라이가 말한 바, 시각적통일의 원리와 시적통일의 원리 사이에는 오히려 직접적인 대립이 있다. 1905년에 출판된 조슈어 레놀즈 경의 <강연집>의 신판서문에서, 편자인 로저 프라이는 반아이크와 루벤스의 전형적인 그림을 비교하여,그 특징을 아주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루벤스의 회화에 있어서의 형체적인 패턴의 완전성과 통일성을 서술한 다음에, 그는 반 아이크로 옮겨,그 엄청난 세부의 덩어리 속에서는 커다란 패턴이나 전체를 지배하는 실루엣, 루벤스의 구도를 묶고 있는 저 주된 선이나 커다란 대조 어느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하지만, 비록 레놀즈의 의미에서는 통일성이 없지만, 우리가 그 그림을 세부적으로 검토해 볼 경우, 부분과 부분사이에는 상호관계에 대한 경탄할 만한 감각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고도로 발달한 상호관계 및 리듬감각을 의미하며, 이것은 레놀즈가 그토록 적절하게 찬양하고 있는 저 통일성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반 아이크 작품의 경우 각 부분은 그토록 분명하게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그 작품의 !

구도 전체에서는 그 같은 시각적인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대답은, 작품속의 각 부분은 다른 원리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시각적으로 각 부분은 배치의 일반적인 균형에 의해서만 결합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그것이 약하고 소극적인 힘,말하자면 어떤 강렬한 시각상의 만족감이나 도움을 주기보다는 질서에 대해 지적으로 승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성이란, 여기서는 본질적으로 시적(詩的)이고 상상적인 것이지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주관적, 상징주의적 성질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순박한 눈에는 띠지 않고 적어도 주의깊게 보는 눈에 있는 현대미술의 유형은 이상과 같은 말로 서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시적 이념'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부연해야 함은 물론이다.

 

2. 에드바르드 뭉크의 의의

파리파로부터 동떨어져 있으면서 그와 구별되는 근대 독일파의 발단은, 스칸디나비아 사람인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뭉크는 독일 미술을 후기 인상파의 추종적인 묘방으로부터 구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북구(北歐)의 특질에 한결 일치되는 표현양식으로 돌아갔다.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1897년에서 1909년까지의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분위기로써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음을 느꼈고, 그 마음에 드는 분위기는 곧, 뭉크를 스승으로 삼아 '브뤼케'라는 이름의 그룹을 결성했다.그리하여 이 그룹에서 표현주의로 알려진 근대 독일미술에서의 보다 광범한 운동이 일어났다. 북구적인 기질에는 당연히 공감될 수 있는 운동이다.

뭉크의 초기 작품은 극적인 가치에 몰두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병든 소녀>나 <죽은 어머니>와 같은 제목이 그 전반적인 성격을 충분히 암시해 주고 있다. 미술에 있어서 정서적인 통일, 즉 인간 감정의 요소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뭉크가 독일 표현주의에 전해 준 하나의 영향이 었다.거기엔 기법상의 영향도 있었다. 뭉크의 초기 그림은 이미 대담하고 활기찬 수법으로 그려졌다.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회화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방법이 있는데, 색조의 방법과 선의 방법이 그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뭉크는 선을 위해 색조를 희생시켰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점에서 근대 독일의 회화운동은 대체로 그를 추종했다. 그러나 선적인 또는 그래픽의 방법이 갖는 제약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무시하여 정신적 또는 심리적 가치를 표현하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기념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질, 즉 리버만(M.Liebermann)이나 코린트(Corinth)와 같은 독일 인상파의 최대의 화가가 뭉크와 함께하는 특질을 발전시킴으로써 이루어 졌다. 선이 면을 둘러싸고, 이들 면은 채색에 의해 형체가 매우 확실해지고, 색채는 매우 강렬해지며, 그리고 구조적인 의미에서 매우 단단하게 조직되므로, 고체(固體)가 가지는 깊이와 분위기를 띠게 된다.

 

3. 브뤼케 그룹

뭉크의 미술에 의해 크게 고무된 브뤼케 파로 알려진 그룹은 1905년 드레스덴에서 세 사람의 미술학도에 의해 발족되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흐너(Ernst Ludwig Kirchner)는 가장 정력적이고, 강력한 멤버였다. 그의 두 동료인 에리히 헤켈(Erich Heckel)과 칼 슈미트 - 로틀루프(Karl Schmidt-Rottluff)는 그보다 3,4년 아래였다. 카르흐너는 드레스텐 민족박물관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의 미개미술에서 그의 첫 영감을 얻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현대미술에 강하게 작용한 이 이국적인 영향은, 그 참된 원동력을 먼저 브뤼케 그룹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그룹에 강렬하게 영향을 미친 또다른 사람은 반 고흐였다. 이 세가지는 현대미술에서 명백히 독일파라고 하는 최초의 유파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던 것들이다. - 활발한 활동기간은 1904-1909까지 계속 되었다. 그때까지에는 이들 미술가들이 각자 개인적 양식을 이룩하였다. 말하자면 자기를 발견했던 것이다. 1906년에 1881년생인 막스 페히스타인과 나이가 훨씬 많은 미술가(1897년샘)인 에밀 놀데가 그 그룹에 참가했다. 그후 1910년에는 1874년에 태어나 1930년에!

죽은 실레지아 출신의 미술가 오토뭘러도 참가하였다. 3년 후인 1913년에 브뤼케는 해산했다. 브뤼케는 그 목적을 다한 셈이다.- 이 그룹의 일반적인 특징은 <반 고흐와 뭉크의 대담한 필법(筆法), 이들 거장들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색채의 장식적인 용법, 미개 미술의 거친 광채등이다. 여기에다 자극이라는게 필요치 않았던 어떤 독일적인 야수성과 동시에 독일인 본래의 전통에 공통되는 초월주의와 심리적 만족에로 향하는 경향을 추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에밀 놀데 - 북구인의 감성

에밀놀데(Emil Nolde)의 작품은 너무도 개성적이기 때문에 브뤼케 그룹에 포함시켜 일반적으로 이야기 할순 없다. 놀데는 근대 독일의 미술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이며, 활기 넘치는 소묘가요, 구도는 힘차고 색채는 뛰어나다 그는 자서전 속에서, 예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밝히므로서 독일파 일반에게 뜻 깊게 했다. "........예술가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참된 가치가 있으며, 제작에 필요한 자극을 준다. ......."놀데의 자서전 속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가 프랑스 미술에 대해 표시한 명백한 반발이다. 이미 1898년에 그는 자기가 프랑스 양식에 끌리지 않았다는 것, 파리의 어떤 키르케(Circe)의 그물에도 사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신(神)에게 감사하고 있다. 1900년에 그는 파리에 가서 미술공부를 했지만, 별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내면소리를 듣기위해, 자신의 본능에 따르기 위해 독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브뤼케에 참가했지만, 이 파(派)에는 2년 동안만 성심을 다했다. 1913년에 그는 남태평양 - 자바와 버어마를 여행했고 그 경험은 그후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음은 틀림없다. 그 여행은 그 후의 !

발전에 영향을 주었음은 틀림이 없다. 그 여행은 그의 색채감각을 강화했고, 그에게 이국적인 마력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열대지방의 야생적인 마력에 굴복하여 그것에 사로 잡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사용하여 자신의 북구적인 의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의식은 고딕시대(생각건대 이는 동방의 이국 취미와 북방의 정신성이라는 두 극단의 혼합물이기도 하다.) 이래 한번도 표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놀데가 우리로 하여금 그 유사성을 찾아 중세로 - 아우구스부르크와 스트라스부르크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窓)에로, 7,8세기 이전의 채색 목판이나 채식(彩飾) 사본(寫本)에로 돌아가게 하는 이유이다.

 

5. 표현주의

브뤼케 그것은 서너 사람의 미술가들로 구성되었고, 그들에게는 모종의 냉엄한 리얼리즘-아니 냉소주의(冷笑主義)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건 부분적으로는 사회에 대한 항의이지만 전쟁체험(제일차 세계대전)에 의해 강화된 항의이다. 무시무시한 전쟁화를 '신즉물주의,즉 '신객관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표현주의에서 하나의 출구를 발견했던) 희망이 넘치는 시대 다음에 오는, 당대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체념과 냉소주의의 감정과 관계가 있었다. 냉소주의와 체념은 신즉물주의의 소극적인 일면이다. 적극적인 면은 당장의 현실을 열광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라고 "신객관주의"에 대해 만하임 미술관장인 하르틀라우프(Hartlaub)박사는 이를 "단지 물질적인 기반 위에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취하려고 하는 욕구의 결과이다." 라고도 설명했다.

"신즉물주의"가 이미 표어(標語)가 이니고, 일반적으로 표현주의가 독일에서 한때 정치적인 이단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구적인 기질에는 너무도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고, 북 유럽 역사상의 미술에도 명백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대 미술의 일시적인 양상으로 생각해 버릴 수 없다. 그것이 지닌 가치는 미학적으로 "순수"하지 않다. 미술에는 적어도 두가지 형(型)이 있다. 하나는 지적(知的) 시각이라는 형으로, 그 목적은 절대적인 미(美)이다. 다른 하나는 정서적인 표현으로 공감적인 감정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그 목적이 공감적인 감정보다는 오히려 반발적인 감정의 전달에 있다고 해야 할 경우도 정서적인 표현주의 형에 속한다.

북구 특유의 감성은 청기사 그룹이 1911년 뮌헨에서 결성되었을 때 일관된 형을 취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이 그룹이 독자적인 예술 철학을 가졌던 한에서는 러시아 태생의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에게 크게 도움을 입고 있었다. 칸딘스키의 논문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는 표현주의 문제에 관해 최초로 쓰여진 것 중의 하나이다. 또한 가장 포괄적인 입문서의 하나이다. 칸딘스키는 이 책을 집필하고 있는 동안에 추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즉 그는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내적 필연성"은 정확히 결정된 비구상적인 상징에 의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1910년 이래 그는 브뤼케 그룹의 구상적인 표현주의와는 다른 서예적 표현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청기사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 특히 프란쯔 마르크(Franz Marc)와 아우구스트 마케(Angust Macke)는, 비록 브뤼케 그룹의 미술가 보다는 훨씬 더 절충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표현주의자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미술가는 모두 전쟁에 나가 전사했기 때문에 그들의 발전은 때 아닌 결말을 맺고 말았다.

현대 철학자인 한나 아텐트(Hannah Arendt)는 함축성있는 각주(脚註)에서 표현주의자의 예술이론의 근본적인 오류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물화(物化)의 과정, 즉 미술가가 자신이 지각한 것을 물질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능력에는 "표현주의가 가지는 대단히 의심스럽고 또 어떻든 매우 비 예술적인 실천수단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추상미술은 그렇지 않으나 표현주의자의 미술은 명사(名辭)모순이다. " 미술가가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로 표현주의를 주장하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으로써 자기 표현을 주장하는 한, 아렌트의 이 말은 ?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표현주의자들은 이 목적을 훨씬 뛰어 넘어, 그들의 "자아(自我)"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 속세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재현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단독의 대상 - 하나의 신(神), 한 마리의 동물, 한 포기 식물의 재현에 한정되어 있으며, 만일 더 큰 패턴으로 적용한다면 그때는 엄밀하게 대칭적인 구도로 된다. 이 양식의 본질적인 성격은 재현된 대상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모순되지 않을 만큼, 자연적인 형체의 리드미컬한 내용을 최대한으로 강조한데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세잔느의 방법에 의해 환기된 형체의 구조에 대한 관심은, 기하학적인 유형의 미술 - 특히 비잔틴 미술과 종족미술 -에서 부활된 관심과 때를 같이하여 일어났다. 아마 어느 정도는 양자의 관심이 서로를 충족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 분야에서의 이러한 관심을 마지막으로 결말지은 것은 현대의 입체파였다.

 

5. 입체파

이 파(派)는 매우 한정된 소수의 일파이지만 매우 일관성 있고 영속성있는 유파이다. <프랑스에서 이 파는 본래 그리, 브라크, 오장광, 잔느레,들로네, 마르쿠시스, 메쨍제, 글레이즈 및 레제와 같은 미술가들로 구성되었다. 한편 독일에선 마르크, 파이닝거, 바우마이스터로 이루어졌다.>프랑스에서는 피카소가 한동안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독일에서는 칸딘스키가 그림으로는 물론 저서를 통해 선도했다. 마티스도 드랭도 한때 이러한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진정한 입체파 화가들은 작풍(作風)이나 방법마저도 상당히 큰 변화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하나의 일관된 미술이론을 예증하고 있고, 또 이 이론은 앞서의 <필레부스>-플라톤의 저작과 거의 같다. 입체파는 대상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플라톤의 말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컴퍼스나 자, 직각자 등을 사용하여 대상으로부터 그속에 본래부터 직선이나 곡선, 면이나 입체를 뽑아낸다.

"형체는 때때로 대상의 재현을 즐거운 것으로 하기 위하여, 예술가가 그것에 덧붙인 그저 양념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구성은 종종 그것이 표현하는 주제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와는 반대로,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술에 있어서도 형체는 내용의 지각적인 성격화에 대한 불가결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추상의 과정은 기계적인 과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미술가 개인의 감수성이 나타날 만한 여지를 남기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입체파 화가는 표현성을 돕기 위한 온갖 우연적인 것들을 그가 그리는 대상으로부터 떼어 버리고, 그가 쓰는 직선과 곡선, 면과 입체의 형체구조에 의존함으로써, 발가벗은 몸으로 세계 앞에서며 스스로가 엄격한 관계에 의해 세계를 드러냈던 것이다.

 

6. 입체파의 경파(硬派)와 연파(軟派)

입체파 전체를 윌리엄 제임스의 용어를 빌어 경파(단단한 심(心)), 연파(부드러운 심(心))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쪽은 브라크나 호앙 그리와 같이 그들의 추상작용을 장식적인 목적에로 돌리는 듯이 보이는 인(人)들이다. 그들의 그림은 색조가 신중하고 주의깊게 제작되었으며, 조형적으로 효과가 있고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샤르뎅의 그림에서 보는 정물화의 조화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그 그림에 유기적인 세계에 대한 암시, 생명작용의 배음(倍音)을 띠게 하는 듯하다. 이와는 매우 다른 것으로는 레제, 메쨍제, 뒤샹, 뒤샹 비용(villon)과 같이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모든 유기적인 감수성은 억압되어 있다. 비유기적이고 기계적인 감성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만일 거기에 배음(倍音)이 있다면 그것은 기계의 배음이다. 즉 발전기라든가 착암기, 수력펌프의 그것이다. 입체파의 이 측면은 구성주의로 알려진 운동과 관계가 있다. 레제의 경우 기하학적 형체에 대한 그 특유의 감각을 통해 표현된 정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감성과 기계장치 사이의 전면적인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두 종류의 감수성!

사이의 대립이 있다고 결론 지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우리는 유기적인 감수성은 물론 기하학적인 감수성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미술사는 이것을 가능함으로 증명하고, 이 두가지는 본래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7. 기계적 감성

오늘날 기계적인 형체가 호소력을 가지는 명백한 근거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수많은 기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선이나 볼륨에 있어 우리가 아름다움이란 이름을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기능적인 완전성을 표현하고 있는 대상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의 특질은 속도, 힘, 정밀성과 같이 추상적인 관념을 나타내고 있는 기계에 국한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에 기계적 또는 기하학적 감성이 나타나는 데에는 보다 깊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갖가지 유형의 기하학적 장식은 기술적인 요소의 잔해가 발잘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더 폭 넓은 설명은 여러민족의 정신 생활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 심리를 다룬 예술사의 변천은 바람직하다 .즉 "외계에 대한 인간의 변화 풍부하고 숙명적인 조정(調整)" 이 마지막 구절은 보링거(W.Worringer)의 <고딕의 형체>에서 인용한 말이다. 이 책에서는 기하학적인 미술의 현상을 포함하는 일관된 심리학적인 이론을 보게 된다. <......즉, 원시인의 미술은 자기보존에서 온 직접적인 충동의 산물이지, 자연계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거리낌없는 사치의 산물은 아니었다.> 인간에게 있어 이와 비슷한 정신적인 태도를 일으키는 것과 미술에서 그 태도에 비슷한 표현을 낳는 여러조건이 현대 생활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외계는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 혼돈의 상태에서, 인간이 "우주적인 경건"이라든가 감각적 만족이라든가 정신적 침착이라든가 하는 것을 가지고 맞설 수 있는 것인가?

 

8. 구성주의 - 순수조형미술

현대의 운동은 두서너 가지 유형의 기하학적 미술을 발전시켰는데, 그 유형들은 기원을 같이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판이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 그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러시아에서 일어났고 "절대주의"라고 불리었다. 그것이 공업재료(강철, 쇠, 유리 등)을 사용하고 있는 한은 기계문명의 기능주의적인 이상에 의해 직접 영감을 받고 있었다. 그 으뜸가는 이론적인 대표자는 카시미르 말레비치(Kasimir M믿퍄초,1878-1935)였다. 절대주의가 독립된 미적이상을 열망했던 한에서는 대체로 다른 유형의 추상미술과 일치했으나 두 개의 "분리파"는 각기 그 나름의 철학용어를 발전시켰다.

 

*분리파

(1)구성주의(러시아 미술)

1)나움가보(Naum Gabo)와 안트완느 페브스너(Antoine Pevsner)형제

2)3차원적인 구성

(2)데스틸(Destijl)(네덜란드)

1)유겐트스틸(Jugendstil)운동 전개의 일환

2)피엣 몽드리안(Piet Mondrian)은 점차 자기의 이론과 실천에 "신조형주의" 이름을 부여 -> 바우하우스로 발전 -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1918-28년 사이에 바이마 르와 데싸우에서 지도자 바우하우스는 유럽과 미국에 있어서 디자인, 건축의 표준에 대해 광범하고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회화와 조각에서 그에 유사한 운동은 바우하우스의 실제적인 활동에 맞먹는 이상주의적인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몽드리안은 "순수" 조형미술이 가지는 사회적 의의와 "현실성"을 강력하게 주장, 미술이 가지는 사회적 의의와 "현실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결정적인 관계"의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는 "자연의 감추어진 위대한 법칙"이며 사물의 표면 배후에 숨겨져 있다. 그러한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 추상미술이다. 비구상미술은 인간문화의 최종적이고 최고의 발전 -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언제나 있어 왔던, 모든 예술의 하나의 고투(苦鬪)의 실현 - 으로 보인다.

 

9. 기하학적 미술의 사회적 의의

과거의 기하학적 미술(켈트 미술과 같은)과 오늘날의 기하학적 미술과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깊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즉,과거의 기하학적 미술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어떤 정신적인 충동에 반응하여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것임에 반해서 오늘날의 기하학적 미술은 의식적이고 지성에 의해 고취되고 지성에 의해서만 감상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소 틀릴 수 있는데, 그러한 미술에 정서적인 요소가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의 목적은 미술가 개개인에 의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검토한다며, 바로크 시대 이래 미술은 명백히 집단적인 목적에 봉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난 250년간에 있었던 모든 미술은 개개인의 미술가가 만든 산물이다. 그것들은 정신생활 그 자체에 - 국가에서의 종교의 위치, 인간에 있어서의 종교의 실천과 관계가 있으며, 그보다 더 파고들면 그것들은, 만일 인간이 살아 남으려면 지성과 직관사이에 지식과 신앙사이에 개성과 규율사이에 언제나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저 미묘한 균형과 관계가 있다는데 기인한다.

어떤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미술은 사회적, 경제적 조건의 단순한 반영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미술의 질(質)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산물과 마찬가지로 아주 일정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술의 질과 그것을 행사하는 경우와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Ⅴ.초현실주의(1)-몽환적 상징주의

 

1. 오토마티즘의 이론

추상의 여러 가지 양식의 바탕에 흐르고 있는 이론들 중, 두 개의 전혀 다른 상징적인 의도를 가진 현대미술의 유형에 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하나는 꿈에 나타나는 심상을 사용하는 것(서예적 상징주의)이다. 상징적인 미술의 첫째 형을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피카소를 거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피카소의 방법

피카소는 다양한 면을 지닌 미술가이다. 즉 그는 입체파의 창시자 중 한사람이었고, 때로는 대상을 직접 재현하는 화법에 나들이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가장 전형적인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의 가장 일괄된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피카소와 그의 유파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예비지식으로서, 직관적인 이해방식과 합리적인 이해방식 사이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않된다. M.제르보스(Zervos)는 여러권의 책 속에서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포괄적인 논평을 한 사람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피카소는 결코 자기의 의지를 자기의 시각에 대립시킨 적은 없다. ........... 시각은 의지와는 전혀 다른 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의지는 끊임없는 노력을 나타내며 직관은 미지의 당당한 비약이다. 사람들은 주관성의 극도의 긴장에 의하지 않고서는 사물의 본질을 획득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각(Vision)" 이라든가 "의지(volunte)"와 같은 말은 정의 없이 사용키엔 위험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적 이해 방식이 심리학에서는 비록 안정되고 있지 않지만 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비론자들의 증거를 부인하는 것은 빈약한 철학일 것이다. 우리가 피카소와 같은 사람들의 미술을 정당화 할 수 있고, 실지어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은 그러한 가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유럽의 회화예술의 논리적인 발전이 아니고, 어떤 역사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발전도 아니며 모든 전통과의 돌연한 단절이며, 회화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온갖 예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객관적 세계와의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즉 수세기 동안 유럽 미술을 특징지어 왔고 바로 그 예술관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게 되어 있던 구체적인 것에 대한 사랑이 고의로 팽겨쳐져 있음을 이해해야 겠다. 그 대신 화가는 그의 모든 지각능력을 내면에로, 주관적 공상이나 백일몽(白日夢)이나 의식 이전의 이미지의 영역에로 향하게 한다. 그는 관찰을 직관으로, 분석을 종합으로 대체한다. 만일 우리가 융(C.Jung)이 공식화한 바와같은 집단적인 무의식의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피카소와 같?미술가가 집단적인 무의식의 특징적 내용인, 저 원형적인 이미지를 계시할 수 있다는 것도 가능하다.

 

3. 현대의 음악과 문학의 유사성

현대 음악의 발전에 있어서의 유사성은 이처럼 매우 복잡한 논제를 다룰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명백할 것이다. 즉 이 논제는 도널드 토비(Donald Tovey)경이 가히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논한 바 있다. 문학에서의 유사성은 내 의견으로는(작자) 한결 덜 정당화 되어 있다고 보지만,훨씬 정확하다. <율리시즈>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하나의 방법으로서 사용한 내적 독백은 사고의 흐름을 그 모든 주관적인 모순을 가진 그대로 종이에 직접 옮기는 시도이다. 조이스는 진일 보한 실험에서(여기도 많은 모방자들이 있었다.), 모순되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에 의존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단어의 구성은 그 구분이나 배열에서 오로지 직관적으로, 피카소가 그의 조형적인 형체를 내던지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내던져져 있다. 단어들은 음악에서의 음표처럼 효과면에서 거의 주관적인 단위로 되고 결과는 그것들의 종합적인 전체에서만 받아들여 질 수 있다.

회화는 간단히 말하면 평면에 색채를 배치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겠는데 음악이 하는 것과 꼭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감각에 직접 호소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화가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아무런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경우 그것이 어필하는 성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처음 플라톤에 의해 주장되었고, 오늘날에는 입체주의자들에 의해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 주어진,기하학적 의미에서의 형체라고 보더라도 어떻든 형체적인 것(formal)이라고 하겠는가?

 

4. 형체 개념의 재검토

위의 물음에 만족스런 답을 하기에 앞서 형체의 개념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하기로 한다.

(1)지각적인 의미의 형체

:이것은 아른하임(R.Arnheim)박사의 말을 빌자면, "내용의 지각적인 특징화를 위해 없어서 는 안 될 전제조건"이다.

(2)구성적 의미의 형체

:이것은 형체에 대한 고전적인 개념. 즉 부분이나 전체나 다른 각 부분에 대해 가지는 일정 한 조화적 또는 균형잡힌 관계이며, 분석되고 궁극적으로는 수(數)로 환원 될 수 있는 것 이다.

(3)플라톤적(이념의 재현) 형체

:이 의미에서의 형체는 상징적인 것이며, 자연주의적 이미지로 아니면 비 자연주의적 내지는 비구상적인 종류의 이미지 어느 쪽으로나 선택적으로 사용 될 수 있다. 전자(자연주의적 이미지)의 유형은 이를테면 초기 기독교 화가가 어린양을 상징으로 사용했을 때처럼 명백하든가, 아니면 벨리니의 <그리스도적 우의(寓意)>와 같은 회화에서 처럼 한결 비의적이든가간에, 과거의 미술가들에게는 종종 모티브로 사용되기도 했다.의식이 덜한 상징주의는 언제나 어떤 종류의 구상적 형체이며, 막연하고 광대하기 조차 한 주관성의 영역을 재현하기 위해 어떤 객관적인 한정된 형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형체는 그 자체가 꿈에 나타나는 심상(心傷)처럼 아주 멋대로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에서의 십자가나 동양적인 신비주의에서의 만다라처럼 대단히 요약적인 것일지 모른다.

 

5. 상징주의 두가지 유형

상징주의의 각 유형에 대한 실례로서 피카소의 <추상>(1929)은 시각적 경험에서는 유례가 없는 한 예이며, 달리의 <컴퍼지션>(1933)은 우리가 보아 알 수 있는 이미지들을 이용하고 있는 그림의 실례이다. 그러나 그 그림은 상징적인 효과를 위해 비합리적인 수법으로 이미지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실례들에서는 색채의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은 단지 우리들을 위해 문제를 단순화하고 있을 따름이다.색채라는 요소는, 형체 그 자체가 상징인 형체에서는 감각적인 성질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예에 있어서 색채는 아무런 의도적인 매력을 갖고 있지 않다. 즉 그것 역시 투영된 이미지가 갖는 무의식적인 기능에 종속하고 있다. 여기서 일어나는 문제는, 이러한 상징주의는 어느 정도까지 미적(美的)인가 하는 것이다. 상징주의와 미술 간의 어떤 유의 연합도 극히 싫어하는 인(人)들이 있다. 로저 프라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미술가와 정신분석> -에서 그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제한된 의미의 상징주의에 대한 공격과 포괄적인 내용을 보인다. "회화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가 그림의 주제라고 부르는 것 - 즉 재현되어 있는 것 - 에 어떤 중요성을 두지는 않는다. 회화적인 형식의 언어를 감지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에 달려 있지, 그것이 무엇인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이 의견에 작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의견은 로저 프라이 자신의 견해에 반작용을 한다. 왜냐하면, 상÷岵?그림은 "무엇"에 대한 예술가의 의식도 여러관계에서 표현하고 있는 잘 그려진 그림이겠기 때문이다. 상징주의에는 나쁜 상징주의와 좋은 상징주의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좋은 상징주의는 순수한 미적가치가 결여된 그림을 결코 정당화할 리는 없을 테지만, 이러한 미적 가치가 주어진다고 하면 좋은 상징주의는 우리가 한 폭의 그림으로부터 맛본 기쁨을 오래 유지시키고 심화시키고 의미를 주게 할 것이다. 하지만, 상징주의는 사용하기가 아주 위험한 언어라는 것, 오직 신중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쓸수가 있다는 것, 그 말을 오용하는 것만큼 진절머리나고 싫증느끼게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자.

 

6. 상징적 미술의 기능

상징적 미술은 조금도 감정의 반응에 의존하지 않고, 추억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에 의존한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미적 호소력이 없는 어떤 예술작품에서 지적이지도 감각적이지도 않는, 그러기에 잠재의식적임에 틀림없는 어떤 만족을 발견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프로이드나 융의 정신분석 이론은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풍부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요컨데 미술가는 자기의 무의식으로부터 상징을 투영하는 능력을 타고난 인(人)이며, 그러한 상징은 보편 타당한 것이다. 즉, 그러한 상징은 미술가 아닌 사람들이 그 능력을 지녔다면 투영할지도 모르며, 또 그들에게 투영된다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징들이다. 이 수용의 행위는 보통 예술작품의 경우에서의 반응인 쾌감정과 대체된다. 무의식이라는 면에서의 보편성이라는 새로운 시금석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로저 프라이가 상징주의로부터 일부러 분리시키고 있는 형체상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상징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는 관념을 배격했고 상징적인 심상도 배격했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질서!

의 인식(미의 고전적 개념)과 형체에 관한 별개의 관념이며, 그리고 형체는 막연하고 광대하기 조차 한 주관성의 영역을 재현하는 어떤 종류의 구상적인 형체이다.

 

7.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자들에 앞섰던 것은 다다이스트로 알려진 그룹이었다. 한데 "다다(Dada)"는 반(反)예술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생의 비극에 너무 지루해진 나머지 아주 불손하게 된 사람들의 몸짓이었다. 다다운동은 1916년 쮜리히에서 일어나 1924년 파리에서 끝났다. 1924년에 "초현실주의"가 그 잿더미로부터 일어났다. 그리고 시인 앙드레 브로통(Andre Breton)에 의해 발표된 선언문으로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으며 조형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시, 연극, 심지어 심리학이나 철학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치면에서는 공산주의와 교류가 없었지만 약간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파(派)의 으뜸가는 교리는, 통상적인 세계보다 더 참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이 세계는 무의식적인 정신세계라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로트레아몽을 그들의 스승으로 인정하고 있고 (그의 <말드로르의 노래>는 확실히 비합리적 환상으로 가득찬 광산이다.), 또 헤겔의 철학에서 형이상학적인 정당성을 찾기까지 하고 있지만,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없었더라면 초현실주의가 현재의 형태로 존재했을지 의심스럽다. 그야말로 이 파(派)의 진정한 창시자이다. 그 목적은 오히려 억압된 무의식의 내용에 그가 접근할수 있게 하는 어떤 수단을 이용하는 것, 그래서 이러한 요소를 더 의식적인 이미지와 일반적인 유형의 미술이 갖는 형식적인 요소까지도 자유롭게 혼합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특별히 무의식의 예술은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어떤 유의 제약도 없는 예술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상상력에 고삐를 매지 않는다면,즉 무의식 속에 숨겨진 샘이 있어서, 우리의 사고를 자동적(自動的)이게 놓아 둔다면, 이 샘은 솟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아카데믹한 미술계에서 뿐만 아니라, 보통 모더니스트로 인정되고 있는 화가나 비평가들 한테서 조차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막스 에른스트, 호앙 미로, 앙드레 마쏭과 같은 매우 진지하고 단호한 미술가들의 목적을 적어도 이해하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 미술가들은 모두 상징주의의 한면인 지성이나 이성의 붕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에로 향하는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 화가로서건 시인으로서건 그의 의식 하에 잠겨 있는 것의 크기와 특징을, 얼마간이나마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초현실주의의 목적이다. 그래서 이것을 이행하기 위해 그는 꿈이나 꿈과 같은 정신상태의 의미심장한 심상들에게서 도움을 구한다.

막스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 동판화집 <백두녀>의 서문에서 앙드레 브르통은 막스 에른스트를 가장 멋있게 홀려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래의 장소에선 흥미롭지 않은 조상(彫像)이 시궁창에 있다면 경이의 대상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계획을 망쳐놓을 것, 즉 사물을 그것이 통상적으로 존재하는 안전성으로부터 잡아채어, 지금까지 꿈 이외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장소에다 갖다 놓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막스 에른스트는 아마 자신의 본의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용인된 의미에서의 미술가, 즉 취미와 감수성으로 묘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재능을 그의 시각 - 상징적인 비젼을 전달하기 위해서, 마치 블레이크가 자기의 상징적인 비젼을 전달하기 위해 시적 감수성을 사용했듯이 그것을 사용한다.

 

8. 자유로운 환상의 미술 - 클레

여기에서 아직 다루지 않고 있는 현대미술의 나머지 다른 측면은 어떤 의미로건 눈에 의한 직접적인 경험(현상적인 형상)의 재생이 아니다. 또한 어느 의미에서도 상징적은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환상의 미술이다. 그리고, 만일 환상이 문학이라면 그것은 문학적인 미술이다. 하지만, 클레의 미술은 그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형체적인 가치가 결여되어 있지 않다. 만일 조형미술이 우리의 시각적인 쾌감을 일으키는 효과를 피해야 한다면 어떤 조형미술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형체적인 요소는 내용에 전적으로 종속하고 있다. 내용은 아무것에도 종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로운 환상이다. 파울 클레는 이 유형의 가장 대표적인 미술자인데 그는 그의 상상력이 활동하는 공상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우화로써 그가 창작을 진행하는 방법을 스스로 서술해 놓았다. 그것을 우리는 "선(線)과 산책하다"라고 불러도 좋겠다. 클레의 세계는 실상 요정의 세계 - 지적인 요정의 나라이다. 요컨데 그것은 고오트 사람(Gothic)의 세계이다. 그는 또한 모종의 중세 사본화를, 특히 유트레히트 복음서(福音書)를 장식하고 있는 선묘(線描)의 환상화를!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종종 중세의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저 흥미진진함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클레의 수고본의 글이 말하자면, 훨씬 폭넓다. 그것은 상상력이 펼쳐진 글이고, 프로이드가 "전의식(前意識)의 마음"이라고 부르는 한결 더 넓은 여백이다.

 

9. 상징주의와 추상

클레의 미술은 기하학적인 추상과 몽환적인 상징주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를 잇는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재능은 (피카소의 재능과 마찬가지로) 현대미술 운동의 양극단을 포함하고 동시에 그것들을 뛰어넘고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그들 편으로 들어 올 것을 요청받아 왔으나 결코 그들의 프로그램에 동의하지 않았다.

피엣 몽드리안의 신조형주의에서 논리적인 극점에 도달했던 저 기하학적 미술은 어떤가 하면, 그것의 순수한 가치는 탁월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강한 호소력을 지니겠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 그러한 미술은 현 세계 상황에서는 유일한 종류의 조형미술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겠다. 기하학적인 미술은 회화와 조각의 통상적인 개념에서 분리되기 쉽다. 그 이유의 하나는, 기하학적 미술은 조형이라는 개념이 뜻하는 바, 조형 재료의 정해진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논리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아마도 그 에너지가 건축이나 산업디자인의 새로운 발전에 의해 흡수되리라는 것 때문이다. 기하학적 미술은 순수한 건축학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즉 그것은 가능한 구성적인 가치의 직관적인 탐색이고 조형적인 표현이다. 초현실주의는 그 정당적 혹은 정치적인 의미를 제외한 모든면에서 그처럼 폭 넓고 다양한 양식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 달리처럼 임의의 편집광적인 환상에서부터, 미로와 같이 거의 추상적인 조화에로 까지 - 이말에는 가능한 한 광범위한 정의를 부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초현실주의라는 말로써 우리는, 재현적인 동기를 가지지만, 이를 단지 의식적인 자아의 층에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인격의 어떤 층에서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는 모든 형식의 미술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초현실은 정신생활의 모든 표출의 증거를 고려에 넣은 경험의 종합이다. 과거의 미술이 얼마만큼 정신의 미승(美僧)인(認) 영역에 힘입고 있는가는 쉽게 입증될 것이다. 미술이 오늘날 임의로 혹은 잠재적 또는 초의식적인 요소를 계산해 넣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언젠가는 가장 충실한 의미에서의 미술의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Ⅵ.초현실주의(2) - 비구상적인 상징주의

 

1. 무의식에 있어서의 형성과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현한 초현실주의적인 미술은 칸딘스키가 1910년 뮌헨에서 창안해 낸 추상적인 표현주의에 복귀하고 있다. 그러한 "표현"은 개인적인 무의식에서 생겨나고 성격상으로는 완전히 주관적인 것으로 남는다. 추상화의 이 최종적인 국면에 관한 이론적 기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체파의 경파(硬派)와 연파(軟派)사이의 구별을 취해 봄이 바람직하다. 그 구별은 두 종류의 사고 - 방향잡힌 또는 논리적인 사고와 공상적인 사고 사이의 보다 근본적인 구별에 입각한 것으로, 윌리암 제임즈에 의해 기초지어 졌다. 방향잡힌 또는 논리적인 사고, 때로는 현실사고라고 불리어 지는 것은 말로 된 사고이며 융이 정의한 대로 하면 그것은 현실에 순응한 사고이고, 그것에 의해 우리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사물의 연속성을 모방한다. 꿈, 백일몽, 조이스가 <율리시즈>에서 그려내려고 시도했던 것과 같은 "의식이 흐름" - 이런 것은 방향잡히지 않은 사고의 유형으로서 그것이 창조적으로는 시인이나 화가들에 의해 분석적으로는 정신병 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선용되어 왔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꿈의 사고는 인간문화의 초기적 단계인 원시적 전(前)논리적 사고의 전형이다. 신화는 말하자면 "인종의 유년기의 심령적인 삶으로부터 보존되어 온 단편이며, 꿈은 개인의 신화이다. 정신분석학자 들은 일반적으로 고대의 신화 뿐만 아니라, 방향 잡히지 않은 사고의 산물이라고 가정한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 또는 아주 부적절하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참된 예술작품에서 명확히 분별할 수 있는 형체 형성의 과정이다. 화가들은 공상의 일부가 발전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주지하고, 그들이 일단 이 발전을 기록해 버리면 비펴은 그후부터 발전할 것이고, 공상은 해석되거나 혹은 융이 시사한 바와 같이 "미학화"하거나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형은 무의식 속에서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이 형의 의식적인 미학화는 표현하는 수단 - 선과 색채, 회화의 제작상의 활동(facture)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심층부에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무의식의 심층부에는 어떤 원리가 형성되어 활동하고 있어, 심층심리(정신)의 어떤 원초적인 질료를 상(icon)으로 박아낸다고 확신한다. "상"이란 무의식계의 원초질료에서 짜낸 이미지이고, 그 목적은 내면적인 필연성에 응하는 객관적인 상관물 - 감득할 수 있는 형체와 색채를 가진 물체 -을 공급하는데 있다. 이 필연성에 결코 정의 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것을 정의한다는 것은 방향잡힌 사고에 즉 언어에 지배되는 것이 되는데 사실 이 과정은 모양 혹은 형체에 한정된다.

<한획, 한점이 그 다음의 한 획, 한점의 모양과 위치를 결정해 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하나의 이미지를 남기게 되는데, 그 이미지의 기원이나 의미를 결코 그는 설명할 수 없으며 (설명하려지도 않으며), 그러면서도 그 이미지는 그에게 무언가 확실한 것, 무언가 진실한 것, 무언가 깊은 필연성을 가진 것, 생명력을 가진 "현존"을 이룬다. 우리는 그것에다 "말이나 기호에 의미를 부여하는 뜻에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사실 이미지는 많은 것을 의미하고, 각기 다른 사람에게 각기 다른 뜻을 의미하게 될지 모른다. 어떤 이미지들은 각각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고,해석될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느 하나의 해석에 적용시키려고 하지 않을 때 훨씬 더 효능이 있게 된다.>, 상징적인 사고는 유아(幼兒)나 시인이나 미치광이의 영역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존재와 동체이고, 언어와 추론적인 이성에 앞선다. 상징은 다른 어떤 인식수단으로 포착할 수 없는 현실의 어떤 면 - 보다 깊은 면을 드러내 준다. 이미지(심상(心傷)), 상징, 신화는 정신의 무책임한 창조물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삼고 있는 회화에서의 새로운 발전은 내면적인 필연성에 이해 - 논리적인 사고와는 구별되는 심층심리의 활동을 공상적 사고 또는 상징적 논술로 투영하고자 하는 요구에 의해 결정된 미술의 모든 양식이다. 이 유형의 미술은 앞서 말한 초현실적 미술의 여러 유형과는 전형 다르다. 미쉘타피에(Michl Tapie)가 이 새로운 미술을 "다른 예술(un art autre) 즉 새로운 유의 예술이라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2. 내면적 필연성의 미술

초현실주의자들은 미술에서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실행했다. 이러한 미술은 전도 리얼리즘으로 주어진 재료, 즉 우리의 꿈의 세계를 구성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취해서 리얼리스트의 미술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재료를 기록하려고 한다. 달리(Dali)와 땅귀(Tanguy), 마그리뜨(Magritte)와 델보(Delvaux)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단지 리얼리스틱한 전통에서의 화가만은 아니다. 그들은 상징을 정확하게 그려내는데 진지한 관심을 쏟았고, 이것을 그려낼 수 있는 기법이면 어떤 것이라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의 꿈을 촬영한 X-선 기계는 발명되고 있지 않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여흥의 하나는 습득물(Object trouve)이 었다. 레오나르도가 미술가에게, 주제나 구도에 관한 암시를 얻기 위해 연구하도록 권장한 벽면의 반점처럼, 혹은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에서 사용한 얼룩처럼, 그러한 물체(오브제)는 일종의 암시력을 가졌고, 어떤 마법적인 또는 불길한 성질조차 지녔다. 자연적인 이러한 물체에 대한 경험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물체를 의도적으로 만들게 끔 했다. 회화의 기술은 자연발생적이거나 소박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낙서와 같이, 소년의 지두(指頭)화(畵)같이, 미술가의 기질이 방해받지 않고 표현되어야만 한다.

칸딘스키 회화의 발전을 잠시 살펴보면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1912년)라는 논문을 썼던 1910년에는 비대상회화에 대한 가능성을 의식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1913년 경까지 비대상적인 도형을 유화에 옮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논문에서 칸딘스키는 자기를 비대상성(non-objectivity)에로 이끌었던 진화의 단계들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가운에 4점의 복제를 여기 첨가해 두었다. 그것은 3가지 다른 착상의 근거를 설명해 준다.

(1)자연으로부터 받은 직접적인 인상, 순전히 회화적인 형식으로 표현됨, 이것을 나는 "인상 (Impression)"이라 부른다.

(2)주로 무의식이고 내면이 성격, 비물질적인 자연의 자발적인 표현, 이것을 나는 "즉흥"이 라고 부른다.

(3)서서히 형성된 내면적인 감정의 표현으로, 되풀이해서 그리고 거의 현학적으로 검토되고 다시 고친 표현, 이것을 나는 '구성(composition)'이라 부른다. 여기서는 이성, 의식, 목적 등이 압도족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때 한 계산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직 감정만이 있다.>

 

1910년의 이말은 예언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미술의 모든 중요한 변종(變種)들을 선견적으로 서술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향마저도 '즉흥'이라는 표제 아래 분류될 수 있다. 칸딘스키는 1910년에 쓴 논문의 보다 이론적인 부분에서 많은 화가들이 그후 봉착했던 두 가지 위험에 대해 경고했고, 또 그가 의미한 바 '즉흥'이라는 것을 더욱 명백히 정의했다. 첫 번째의 위험은 '기하학적인 형체에다 색채를 완전히 추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순전히 표면적인 장식으로 발전하는 위험), 순수한 패턴화'라고 칸딘스키는 시사했다. 현대미술 비평의 가장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는 이 추상의 구성적인 사용과 장식적인 사용 사이를 식별하는 일이다. 두 번째의 위험은 '구체적인 형체에 색채의 보다 자연주의적인 사용(천박한 환상의 위험성)'이다. 각주(脚註)에서 그는 '새로운 자연주의는 추상화와 등기물일 뿐만 아니라, 동일물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색채의 상징적인 사용에로 복귀하는 것을 경계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경고 후, 이어 하나의 선언에서 그는 우리가 미술사에서의 위대한 발아기(發芽期)의 하나를 경험하고 있고, 미술가들은 커다란 강제력 즉 '내면적 필연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습적인 미술의 관심사가 되어왔던 자연의 형체는 이 내면적 필연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서는 장해가 되므로 제거되지 않으면 않된다. 미술가의 내면적인 강제력에 상응하는 새로운 구성 - 엘리어트에 따라 우리가 지금 '객관적인 상관물'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 이 개발되어야 한다. 칸딘스키는 이어서 필요한 것은 눈에는 더 적게 영혼에는 더 많이 호소하는 미술의 형체 - 순전한 형태(configuration) - 이라 말한다. 이러한 '감추어진 구조'는 외적으론 응집력의 결여처럼 보이는 것이 내면적인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어떻게든' 관련된 형체는 실제로는 아주 정밀하게 서로 결합되어 있다. 바로 이 방향에 장래의 회화구조가 놓이게 된다고 칸딘스키는 결론지었다. 회화에서의 객관적인 상관물을 이룩하는 것은 '합리적인 요인'들의 협력을 필요로 할 것인바, 이 합리적 요인을 두고 칸딘스키가 의미한 것은 기능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이었다. 아이트너의 논문에서 뮌터자료가 주는 중요한 교훈 하나는 '칸딘스키가 비상한 주의력을 갖고 자신의 작품을 구성, 계획했다는 사실을 익히 깨닫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것은 다다의 자동 기술법이나 이른바 액션페인팅과는 거의, 아니 전혀 공통성이 없다. 칸딘스키는 작품을 앵그르가 했던 것 만큼이나 조직적으로 구성한다. 그의 비대상 회화는 지적(知的)집중의 놀랄 만한 업적들이다. 이 업적들은 유별나게 꼼꼼한 시각적인 상상력과 놀랄만한 시각적인 기억력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꼼꼼한 시각적 상상력은 무의식에서의 형성의 과정에 의해 생명이 불어 넣어질 수 있다.

 

3. 추상표현주의

칸딘스키가 '내면적인 성격, 비물질적인 자연의 주로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표현'에 관해 말할 때, 실상 그는 지금 우리가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얼마간 애매한 것이 있다. 자발성 혹은 자동기술법, 즉 투영의 행위와 투영에 앞서는 것, 의식의 수준 아래에서 일어나는 형성 또는 창조의 행위와를 구분하지 않으면 않된다. 하지만 그와같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재료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일까? 가장 정상적인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꿈꾸는 것에 의해서이다. 의식의 수준 아래에 있는 것은, 측정할 수 있는 경계선안의 단순한 꿈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게 아니라 - 우리는 꿈꾸어진다. 무의식 세계에는 아무런 자연적 혹은 합리적인 질서도 없다. 다만 형식도 감정적인 조직도 없는 복합적인 그물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로지 무의식이 의식의 수준으로 떠오를 때 - 꿈을 회상한다는 것은 이미 의식의 노력이다. - 그때만이 무의식의 내용은 의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그 결과 우리가 그것을 관조할 때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의식은 우리가 결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의식적인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 할지라도 , 그것은 프로이드가 현실원리(reality-principle)라고 부른 과정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 즉 우리의 의식에 받아들여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미술가로서 출발점으로 삼는 사실은 '내면적 필연', '내적욕구'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의 표현을 추구하는 강제적인 의지의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가 미술가로서 추구하는 것은, 이 욕구에 상응하고 그것을 객관화하고 한정하고 명확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내면적인 평온과 심적인 평형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구체적인 형체 -색채나 소리, 심지어는 언어에서의 형태 - 이다. 낙서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런 활동이다. 최근 미국의 한 여교사의 연구를 보면, 낙서에서 소묘화까지에는 연속성 있는 일정한 발전이 있다는 것과 맹목적인 활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이와같이 미술가들이 거치게 되는 발전의 경로가 실질적으로 기초적인 낙서로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을 정성들여 손질하고 응집해서 원초적인 혼돈으로부터 원형적인 형체를 뽑아낸다. 이들 회화 가운데 어떤 것은 의도적으로 서예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회화를 유치하다고 해버릴 수는 없다. 규모나 제작기술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언급하고자 하는 바와 같이 방향, 통제, 인격적인 관여 등의 요소가 개제되어 있는 것이다.

 

4. 액션페인팅

미국에서 액션페인팅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운동을 이끌게 되었던 것은 초현실주의의 이 변종(變種)이 었다. 이 유형의 자동기술법은 고도로 세련된 형식의 낙서 - 예컨대 동양의 서예(書藝)에 비교될 수 있겠는데 사실 동양의 서예는 앙리 미쇼(Heriri Michaux)나 마크토비(Ma가 Tobey)와 같은 미술가의 경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마숑이 미국에 망명했던 1941년에 그가 실행했던 선(線)의 황홀경은 세련된 서예 혹은 양식화된 서예이고, 화필을 오랜동안 훈련한 증거이다. 칸딘스키의 초기 즉흥 그림도 그러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마숑이나 미로의 양식으로 그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 선구자들의 양식화된 서예를 원용하고 있었는데, 그의 활동에는 소박함이나 어린애 같은 면은 전혀 없었다. 목적은 이미 '자기표현'이 아니며, 그렇다고 무의식에 기원을 둔 형체적인 여러 요소의 자동적 투영조차도 아니었다. 즉 "새로운 회화는 미술가의 실존과 똑같은 형이상학적인 실체이다."다시 말해서 "액션페인팅은 자기창조, 자기한정 또는 자기 초월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상처와 마력을 지닌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용인하는 체하는 표현과는 관계를 끊는다." 필연성은 이미 '내면적'이 아니며, 칸딘스키가 한 말의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도 아니다. 액션페인팅 화가들의 작업은 사실상 그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해서 사심없는 관찰자라면 알프레드바(Alfred Barr)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들의 비타협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신봉자가 늘어 나는 것은, 대체로 이들 회화가 관능적, 정서적, 미적 그리고 때로는 신비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작용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참고>action painting

-회화 제작에 전통적으로 쓰여 온 수법을 사용치 않고, 작품을 창작하는 것, 그 묘법에는 캔버스에 그림물감을 튀게 한다든지, 흘린다든지, 또는 내던지는 방법이라든지, 막대나 인두 따위를 써서 그리는 방법이 있다. 1947년에 폴록이 최초로 시도한 이 기법은, 화가가 '그림에 접근하여 그림과 일체화했다는 느낌을 한층 심화(深化)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타시즘(tachisme'이란 말은 사실상 '액션페인팅'과 동의어이다.

 

5. 불가지(不可知)의 구름

유럽의 '타시스트(tachiste)'는 미국의 '액션페인터(action painter)'와 구별되는 한에서는, 자기 명확화의 제스처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의현실(simulacrum)을 탐구하고 있다. 즉 그는 화가 자신이 근원이 아니라 그 통로인 바, 객관적인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그의 '얼룩' 즉 타시(tache)를 교묘하게 다루며, 그 얼룩은 마침내 이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그의 직관과 조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정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신비적인 체험을 다룬 14세기 논문의 제목인 <불가지(不可知)의 구름(The cloud of unrnowing)>은, 샘 프란시스(Sam Francis)나 마크토비의 몇몇 그림에 들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구름은 움직이고 소용돌이 치고 있어, 그 가운데는 보다 명확한 어떤 형체, '사고(思考)의 황야에 출몰하는 형태'가 보인다.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유형의 미술은 의식의 베일 뒤에 있는 이와 유사한 형체, 심리적인 미립자(微粒子)가 들끓는 가마로부터 억지로 짜낼 수 있는 재현적인 의미와도 무관한 형체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형체는 구상적(具象的)일 필요가 없다. 그러한 형체는 무정형이고 '형체가 없는 (gestaltlos)'편이 더 나을 듯하다. 우리가 관조와 직관에 의해 불가지(不可知)의 구름을 깊이 꿰뚫어 보면 볼수록, 의식세계에서의 형태나 이미지를 찾아내는 우리의 노력은 줄어 든다. 그러면 화가는 의미있는 형체를 어떻게 알아채는 것일까? 어느 특정한 형체가 다른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답은 "그러한 형체는 발견되었을 때 영향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 형체는 무엇보다 먼저 화가에 대해 그리고 전시했을 때 관람자에 대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원형적인 형체라고 하는 관념, 즉 의식적인 의지를 개입하지 않고 일어나며, 어느 정도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호소하는 다소 복합적인 모양을 우리에게 남겨주는 결정화의 과정이라는 관념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형체에 대한 해석을 성급하게 추구할 필요는 없다. 멕시코나 페루의 미술작품, 선사시대미술이나 동양미술 등을 보고도 어떤 목적이나 의미, 상징적 의미로써 감탄하지는 않는다. 이미, 그 원형적인 형체가 있어 그 비례나 조화에 의해서만이 아닌 그 자체가 초현실적이고 비(非)미학적(美學的)인 신비로운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현대 미술가들이 구현하는 생명적인 원리는 미술가 자신의 것이다. - 그 자신의 호흡으로 불어 넣어진 생명력이고, 그 자신의 정신적인 존재의 소산물이다. 이런 '물활론적'인 형체를 설명하기 위해(주로 프랑스 비평가들에 의해)제시되어 왔던 몇가지 말 가운데 있어 '현존(現存)'이라는 단어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형태화(configuration Gestalt)를 가리키고 있다. 포트리에(Fautrier), 볼스(Wols), 샘 프란시스가 그린 회화는 불확정적이고 거의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불규칙적인 얼룩이 응결해 있어 화면의 가장자리를 빼고는 경계짓는 윤곽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6. 맺는말

회화는 언제나 기능이며, 숙달되어야 할 기술이며, 수련의 산물이다. 이 새로운 화파의 최초의 거장격인 칸딘스키는, 높은 자각을 가진 기능인이었다는 사실과 그의 회화는 위대한 기량, 위대한 전문지식(science)을 보여 준다. 클레와 피카소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 할 수 있다.불협화음이나 갈등이 우리의 미적 경험의 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미술가들은 언제나 가능한 한 충분한 장비를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또 감성의 가장 미묘한 직관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을 포함한 제작방식이 서?이나 무능함에 의해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내면적 필연성'이란 말은 아마도 우리시대의 미술에서는 기초가 되는귀결일 것이다 .그러나 이 내면적 필연성에는 외면적 필연성이 대응하고 있으며, 외면적 필연성은 단지 최대한의 효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필연성이다. 미술은 바로 이 두 필연성의 타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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