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인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사조인 팝아트는 예술성 자체의 의미라기 보다는 광고, 산업디자인,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 예술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해 언급된 명칭이며 특히 도시문화의 단면으로 통속적인 문화나 상업적인 문화를 가리키는 통칭으로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현대사회를 평하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품까지도 포함하여 확대 수용한다.
팝아트는 1950년대 유럽의 타시즘과 아르 브뤼 , 엥포르멜 등으로 불리우는 서정 추상과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 특히 앤션 페인팅이라 불리우는 전성기의 추상미술에 반하여 일어났다. 팝이 태동한 1950년대 후반과 전성기를 이룬 1960년대는 바로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주의 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팝아트는 미국적 물질주의 문화의 반영이며, 그 근본적 태도에 있어서 당시의 물질문명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와 깊이 연결되어있다. 다다와의 차이점은 다다는 1차 세계 대전의 참상 앞에 기존 기성세대의 위선과 부패에 대한 반항과 분노였던 것에 비해 50-60년대의 소비사회 발달 안에 물질적 풍요와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팝 pop'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경향이 있지만 '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경향이 유력하다. 즉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題材)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미술평론가 L.앨러웨이(awrence Alloway)가 54년에 광고문화가 창조한 대중예술이란 의미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팝 아트가 비평용어로 채택되기 이전에 팝 아트적 징후를 상기시키는 작품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즉 49년부터 F.베이컨이 작품에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팝 아트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베이컨은 팝 아트와 실질적인 관련이 없으며, 겨울에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품 및 그것과 관련된 토론 가운데 팝 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대중소비문화에 대한 관심 아래 56년에 열린 ‘이것이 내 일이다’전시에 R.해밀턴이 출품한 《오늘날 우리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팝 아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팝 아트는 발생초기부터 사회 비판의 의도를 뚜렷이 갖고 구태의연한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와 예술을 접목시키고자 했던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따라서 알로웨이가 영국에 있어서의 '대중문화'라고 말한 것은 미국과는 다른 , 문화적 계급을 의식한 것이다.
대량생산·소비사회와 그에 따른 대중 문화의 출현등 당시의 도시 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출현한 팝 아트에서 보이는 대중적 형상의 주요 원천은 미국이며 도시 문화에 밀접하게 접촉한 미국의 미술가들은 그 문화의 특수한 풍조와 속성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이 운동은 어느 면으로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낭만적인 축제로서 미국에서 미술가들이 비슷한 주제를 채택했으나 이는 액션 페인팅의 고뇌에 찬 개인적인 허풍떨기에 반대하는 대규모의 전면적인 반발로서 이용되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의 애매하고 환영적(幻影的)인 형태와 주관적인 미학에 대한 반동으로 발생. 미국의 팝 아트는 특히 미국의 전위적인 작곡가 존 케이지의, 지극히 평범한 것조차도 미적,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는 사상에 고무되었고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세대인 R.라우션버그와 J.존스는 이미 50년대 중반부터 각종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활용하였는데, 이들의 작업이 다다이즘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서 네오 다다(Neo dada)로 불려졌고, 그 외에 신사실주의, 신통속주의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네오 다다의 경우, 형상을 부활시키면서 특히,국기,인쇄물,달력,사진등을 그림에 적용함으로써 주제를 세속화시킨 새로운 예술을 선보인다. 그 대표적인 작가인 제스퍼 죤스는 1958년작 <세개의 국기들>1959년작<채색된 숫자>등의 작품에서 보듯이 숫자의 집합, 미국 지도, 성조기등 단순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기교가 넘치는 물감의 구사로 하나의 표면을 창조한다. 회화를 재현적 표현이라기보다 오브제로 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에 자,빗자루,솓가락등을 부착하기도 한다. 또 다른 네오 다다의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있는데, 그는 채색된 화면과 여러 가지 오브제를 결합시킨 콤바인 페인팅을 제작한다(삶과 예술을 결합시키려는 의도) 신문이나 잡지의 사진 또는 그림들도 사용하여 잡다한 사물들과 함께 강력하고 혼잡스런 인상을 준다. 작품에 사용되는 오브제로는 무선기,자명종 시계 때로는 세워 놓을 수 있는 3차원적 오브제도 등장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리히텐슈타인 ( Roy Lichtenstein : 1923.10.27 ~ )의 경우는 만화의 형식,주제,기법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값싼 만화가 인쇄되는 제판 과정에서 생기는 망점을 세밀하게 재현하여 사물을 확대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그는 또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넓은 붓자국을 만화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발표하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의 과장된 표현방법을 비웃는 것으로 해석된다.
팝 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 고속도로변의 빌보드와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코카 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등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발원하는 반(反)예술의 정신을 미학화시키고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 팝아트의 초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로 특히 라우센버그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견되는 물체, 이를테면 코카콜라병, 자동차의 타이어, 침대 등을 이용하여 이른바 컴바인 페인팅을 창안해냄으로써 팝아트가 성립할 수 있는 기틀 마련했다.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의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목표로한다. 일상적으로 흘러넘치는 영상 또는 물체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는 반 미학적이고 , 다다적인 사고방식. 그러나 다다이즘과 기본적으로 다른 것은 팝 아트가 세련된 고도의 기술에 의해 '일상'을 미술의 영역으로 또는 사회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 있으며 또한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는 구상적이지만 회화적 사고 그 자체는 추상성이 강함. 팝아트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한다. 특히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예를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세븐 업의 트레이드 마크, 그리고 디크트레이시의 연속만화 따위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기호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했다.
팝아트 작가들은 기법의 다양성을 보여주어 팝아트의 양식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게끔 한다. 화가라기보다는 물체를 만드는 작가로서의 클래스 올덴버그는 작품의 크기,재료,질감에서 놀라움을 일으킨다. 1961년에 음식물 모형을 파는 상점을 열었으며 그 후 일상용품을 확대,변형시킨 작품(타자기,욕실용구,선풍기,석고·헝겊으로 만든 대형 햄버거,아리스크림,담배꽁초등)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들이 이례적으로 대규모적이면서도 주제는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속성을 드러내어 해학성과 함께 대중 문화·제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이외에도 광도된 이미지들을 여러부분으로 나눈 후 다시 짜 맞추어 거의 곡상에 가까운 효과를 내는 작업을 하는 제임스 로젠퀴스트, 인간의 형상또는 서구 남성들의 소망들을 시사하는 추상들을 평면적 실루엣으로 처리하는 탐 웨셀만등의 작가를 들 수 있다.
이미지의 대중화 : 팝아트의 특징은 '개방' 과 '비개성' 으로 집약됨. 이미지의 대중화, 형상의 복제, 표현 기법의 보편화에 의해 예술을 개 인적인 것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개방시켰다. 팝 이미지는 광고, 상표, 만화, 영화등의 대중적 이미지를 한번 더 보기 위한 시각적인 재현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현대 인간의 감수성을 의식화한 것이다.
팝 아트 작가들은 손으로 하는 작업을 기피하여, 소재를 선택하고 실크스크린 판을 만든 뒤 적당한 색깔로 찍어 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을 통한 작품은 누구의 작품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개성적 이었다. 앤디 워홀은 기성 상품이나 특정 스타의 얼굴 등을 똑같은 이미지로 기계의 힘을 빌어 자주 반복 하여 배열하는 작업을 했다. 따라서 특정한 상품이나 이미지는 어떤 개인의 독자적 절대적인 영역이 아닌 복제 가능한 비사유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 모든 작업은 주로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는 광고의 속성을 차용한 것으로 현대의 대중 문화에 걸맞는 예술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앤디 워홀은 대중적 이미지뿐아니라 공포의 이미지도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 배우와 같은 유명인들,꽃,코카콜라병,또는 전기의자,자동차 충돌 장면, 폭풍의 현장등을 캔버스위에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거의 임의적인 색채를 첨가함으로써 미묘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에로티시즘의 표현 : 대량소비사회에서의 현실을 반영한 팝 아트는 매스미디어의 통속적인 주제, 사랑과 성(性)을 통하여 진실된 인간존재의 참 모습을 찾고자 하였다. 도구화된 성과 상업화된 성 표현으로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의미를 환기시켜준다. 팝 아트가 에로티시즘과 관련이 있는 것은 대량 소비, 즉 상업적 전달메세지로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성(性)이기 때문 이러한 경향은 섹스와 매력을 강조하여 인체와 젊음을 개방하고, 노축된 윤곽선으로 에로티시즘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새로운 에로티시즘으로 탄생시켰다.
레터링과 그라피토 기법 : 민속적 의미인 성조기나 표적 등을 사용하여 자극적이며, 선명한 효과로 디자인 요소인 대칭과 균형을 강조한다. 화면에 문자와 숫자등의 기호를 사용한 팝 아트는 날카롭고 선명한 효과로 비개성적이고 반감정적인 차디찬 기계적 감성을 추구한다. 그라피토(Graffito)란 고대의 건축물에 당시의 사람들이 남긴 낙서, 그림, 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팝 아트 작가들에 의해 하나의 기법으로써 작품에 활용되었다.
앗상블라쥬(Assenblage)와 전위예술로서의 표현 : 기존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이전에는 작품의 소재로 사용치 않던 일상 생활 주변의 기성 이미지의 비예술적 오브제를 선택 하는 새롭고 전위적인 시도와 재래의 조각이나 회화 기법에 반대하는 앗상블라쥬의 표현은 팝 아트적 요소이다. 앗상블라쥬(Assenblage)는 신문이나 잡지 등 종이를 찢어 붙이는 꼴라쥬에서 발전한 다른 오브제나 폐품을 모아 부착시키는 기법이다. 이는 작품의 소재를 무한하게 만들 수 있도록 가능성을 부여하였고, 각 단편들이 의미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의 작품을 창조하는 유기적 형성을 암시하는 역할을 했다. 즉 일상적인 오브제를 소재에 포함시켜 조형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