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페라(temperare)
봄(포플러 나무에 템페라/203×314cm/1482년경) - 보티첼리(Botticelli, Sandro/1444~1510/이탈리아)
라틴어의 ‘temperare(안료와 매체의 혼합)’를 어원으로 하는 그림물감의 일종. 난황·난백·아교질·벌꿀·무화과나무의 수액 또는 양이나 염소, 기타의 수피(獸皮)로 만든 콜로이드 물질 등을 단독 또는 적당하게 안배한 것을 매개제로 써서 채색의 정착을 기한 불투명 물감 또는 이것으로 그린 그림이다. 따라서 매제가 다르면 당연히 기법도 다르므로 이 점 때문에 템페라를 정의하기가 곤란하다. 템페라는 로마시대에 창시된 습식법(濕式法)인 프레스코 화법(13∼16세기경)에서 발전한 건식법(乾式法) 프레스코 세코(secco)이다.
프레스코는 습식 간접식이지만 프레스코 세코는 마련된 서포트(주로 패널)에 직접 그릴 수 있다는 점과 섬세한 묘법이 가능한 탓으로 초기 르네상스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사실 채화(彩畵)의 경우 프레스코보다 광택이 있고 겹쳐진 붓자국이 보이는 시각적인 효과, 즉 색채심미성이 뛰어나다. 매제의 용법은 난황에 냉수를 약간 첨가해서 우유와 같이 만든 다음, 벌꿀이나 수액을 섞는 경우가 있고 안료를 물에 용해시켜 두었다가 여기에 그런 매제를 섞어서 채색하기도 한다.
채색층에 투명감을 갖게 하고 싶을 때에는 이 매제에 난백을 소량 첨가한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 관이라든가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이탈리아 분묘의 벽화 등 유화가 발명되기 이전의 고대와 중세 유채화의 상당 부분이 템페라에 포함된다. 피렌체의 성마르코대성당의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팔라초 리카르디의 고촐리의 작품, 그리고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들, 즉 보티첼리·조토·필리포·치마부에 등의 작품에서는 동일 화면에 유화를 병용하는 용법이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오늘날의 계면(界面) 활성제에 상당하는 옥스 갤(ox gall)이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템페라의 채색화면에는 그 위에 화면피복(서페이스 코팅)으로 수지유(樹脂油)를 바르면 유채화와 다름없는 윤택 있는 색의 심미성을 보이며 내구성도 생기므로 후세에는 이 수법이 쓰였다. 이렇게 15세기 말경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유화가 색채효과를 완성할 때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이 화법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특질을 가진 템페라화는 이젤 페인팅의 기원을 촉진시켰고, 유화 그림물감에 체질적인 진전을 초래하여 마침내 오늘의 유화용 그림물감으로 옮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개성적 표현을 추구하려는 근대회화사에서 독자적인 창조를 기법적으로 가능하게 하여 근대의 템페라화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기에 템페라의 의의가 있다.